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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연극 무대의 주인공이 되는 법
스스로 빛을 내는 ‘뜨거운 인간’이 되자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0-06-09 09:30:47
대학에 들어가 아무 것도 모르고 가입하게 된 장애인권동아리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이후 내가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사회적으로 구성된 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장애인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할 때쯤 그는 동아리의 대표가 되어 있었다. 그는 대표라는 일을 훌륭하게 해내는 사람이었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하면서 전략적으로 화를 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얼마 전 책을 썼다는 소식을 들었다. 책 제목을 듣고 나는 한참동안 갸우뚱 거렸다. 내가 알던 그는 까칠하고, 날카롭고, 차가운 사람이었다. 그의 책 제목은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이다.

그는 오래 전 “명문대+장애인이면 ‘일반인’이 될 줄 알았는데, ‘잘난 장애인’이 되었다”며 온라인 상에서 평범한 장애인들의 비난을 받았던, 작년 이 공간에서 ‘야한’ 장애인으로 ‘야한 미물’의 세계를 꿈꾼다는 칼럼을 썼던 김원영이다. ‘차가운 희망’과 ‘뜨거운 욕망’이라는 상반된 단어의 대비에서 짐작하듯 그의 책은 두 개의 세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살아남은 한 장애인 청년의 이야기이다.

김원영,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2010. ⓒ푸른숲
에이블포토로 보기▲김원영,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2010. ⓒ푸른숲
누구나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그는 현저하게 이질감을 가진 두 개의 세계에 공존해 왔다. 강릉의 한 시골의 방이 세계의 전부였던 소년이, 동아리의 세미나를 이끌고 밴드 연습을 하며 자가용으로 강변북로를 달리는 넓은 세계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를 중심으로 이 쪽 세계는 점심 식사 후 스타벅스 커피를 마실까 커피빈 커피를 마실까 고민하는 명문대 대학생 친구들이 있고, 다른 쪽 세계에는 외출조차 하기 힘든 중증 장애인 친구들이 있다. 그는 이질적인 두 세계의 교집합(혹은 여집합?)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장애인 · 추남/추녀 · 가난뱅이들에게, 쿨한 척 하기를 뛰어넘어 뜨거운 사람이 되자고 외친다. 그는 현실에 만연한 쿨함 혹은 허세를 냉정하게 들추어낸다. 하지만 딱딱하고 두꺼운 쿨함의 껍질을 벗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그의 외침은 불편하지만, 그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김원영의 책을 읽으며 하나의 드라마 혹은 연극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변화하는 세계를 가로질러왔기 때문이며, 실제로 연극을 한 경험이 중요한 변화의 시점에 놓여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작은 방에서 나와 재활원에서 처음 했던 연극의 무대가 자신을 세계로 ‘등장’시켰던 가장 중요한 경험 중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삶은 하나의 연극 무대로 묘사된다. 그는 연극 무대의 주인공인 동시에 관객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책 전반에 걸쳐 자신의 삶을 관객으로, 철저하게 제3자의 눈으로 조망한다. 평범하지만은 않았던 삶의 매 순간 항상 의미를 포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러한 자기객관화가 가능했기 때문이리라. (개인적으로 그를 차갑고 냉정한 인간으로 느꼈던 이유도 이 때문인 듯 하다.)

한 사람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완성시키는 것은 삶의 경험들, 타인과의 관계 그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서 만들어내는 ‘의미’들이다. 그러한 의미들이 모여 우리는 ‘특별한’ 사람이 된다.

하지만 그러한 의미를 포착하기 위해 반드시 객관화된 ‘시선’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김원영은 책에서 그러한 시선들에서 자유롭지 않다.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멀찍이 떨어져서 관객으로 상황을 지켜본다. 나는 아름다운가, 추한가, 미적인 관점에서 내 모습은 어떻게 비추어질 것인가. 그는 스포트라이트를 관객 쪽으로 비추어 객석과 무대를 바꾸는 획기적인 시도를 제안하지만, 여전히 관객의 시선을 배제하지 못한다. 인생이라는 연극 무대는 나의 1인극으로 만들 수도 있고, 관객이 전혀 없는 혼자만의 연극으로 만들어낼 수도 있으며, '고도를 기다리는' 부조리극이 될 수도 있다. 이 경우에도 내 연극의 주인공은 여전히 나 자신이며, 객관화된 관객의 시선 없이도 다양한 의미부여가 가능하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판단과 분석에서 자유로워질 때 그가 말하는 진정한 “자유의 주체”가 되는 것이 비로소 가능해지지 않을까.

김원영은 대학생이 되어 캠퍼스를 거닐던 순간의 자신을 “대학생으로 불리긴 했지만, 사실상 대학생이 아닌, 태양계의 행성이긴 하지만 사실상 행성 취급을 받지 못한 명왕성 같은 인간”으로 묘사했다. 명왕성이나 지구와 같은 ‘행성’은 태양과 같이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의 빛을 받아야만 반짝반짝 빛날 수 있다. 태양의 시선을 받아야만 빛나는 ‘행성’ 같은 뜨거움이 아니라 스스로 뜨겁게 빛을 비추는 ‘항성’과 같은 뜨거움을 가진 사람이 진정 ‘뜨거운 욕망’을 가진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항성’처럼 뜨거운 삶이 되기를, 그리하여 자신만의 연극 무대의 주인공이며 자유의 주체가 될 수 있기를. 나의 삶 그의 삶 그리고 우리의 삶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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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문영민 (saojungy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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